사람의 인생엔 몇 번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일정한 나이에 맞게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
나 역시 세상에 기대에 맞추어 평범하게 살았다. 일에 쫓겨, 사람에 치여, 시간을 재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세상에 기대에 맞춰 사는 내 모습이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 온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라는 걸.
이런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를 괴롭혔고 회사 일에 치여 나의 할 일은 할 수 없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의문에 휩싸여 갔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책의 충고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 끝에 결론에 달했다.
지금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때라고. 우물 밖으로 나가는 개구리가 되고 싶었다.
견문을 넓히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읽는 간접 경험도 있지만 해외에서 다양한 직접적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선진국인 일본을 경험하고 싶었다.
일본, 단순한 ‘여행’이 아닌 ‘유학’의 길로 가겠다고 결심했고 곧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유학을 결심한 후, 내게는 처음 하는 유학이었고 당연히 유학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여러 방면으로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으로 꼼꼼히 유학원들을 체크해본 결과, ‘이찌방 유학’이라는 이름의 유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찌방 유학원은 유학생들의 후기 및 사진들이 생생하게 올라와있었다.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한일교류회모임이나
일본 유학중에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일을 상담해주는 케어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또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직원 분들과 10년 이상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서포트 해주는 매니져들이 있었다.
더 자세히 검색을 해보니 ‘이찌방 유학’의 이름이 실려 있는 인터넷 뉴스기사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뉴스기사에도 언급된 (뉴스기사에 언급이 되었으니,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이찌방 유학을 선택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의 길을 결심했기에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며 유학을 준비하고 싶었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부담감과 첫 유학의 무지함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학교 및 숙소선택에서부터 서류대행,
그리고 일본에 가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안내해줌은 물론 실제 생활에 필요한 요소들까지,
이찌방 유학원은 그 모든 준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함께 도와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이찌방’이라는 단어의 뜻이 ‘첫 째, 가장, 제일’ 이라고 했다.
그 이름을 가질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본 신주쿠에 내려서 ‘도쿄드림’ 숙소 사장님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숙소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었다.
쉐어하우스라고 해서 불편할 것이라는 예상 외로 편리한 요소들이 많았다.
지하철역 바로 부근이고, 신주쿠와도 도보로 10분 내외의 거리.
그리고 공과금을 포함한 월세로 유학생에게는 부담이 덜 되고, 근처에 편의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화장실과 샤워실이 2개씩 있어서 용무를 보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주 1회씩 숙소회사 측 직원이 숙소 청소를 도맡아 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내 방은 2인실, 이미 숙소에 도착해있는 룸메이트는 없었고, 나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입학하기로 한 ISI랭귀지스쿨이 개강하기 전,
조금씩 타지생활에 적응을 해가면서 함께 살게 된 룸메이트와 도쿄 시내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신주쿠.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기에 걸어서 신주쿠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일본말들, 익숙하지 않았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역시 도쿄의 관광명소답게 신주쿠는 그야말로 으리으리했다.
물론 일본말이 가장 많이 들려왔지만 영어와 중국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했다.
일본을 여행해보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키호테’라는 체인점 이름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돈키호테는, 밤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같은 물품이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잡화 할인매장이다.
신주쿠에 있는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물품들이 여기에 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없는 게 없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갑자기 어디선가 천둥 번개가 쳤다. 깜짝 놀란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지?’
잘 살펴보니 지나가던 옆 건물의 옥상에 공룡이 강한 불빛과 함께 포효하고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과 우리는 사진을 찍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확실히 도쿄 제일의 관광명소인지라 시내 한복판에서도 이런 이벤트를 했다.
신주쿠는 우리나라의 명동, 강남처럼 번화한 도시지만 구석구석 곳곳에 허름하지만
전통이 있어 보이는 이자카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지만
그 내면을 깊숙이 들어가면 단순히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 곳의 음식점들은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고 그 유명한 일본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중 허름하지만 가장 전통이 있어 보이는 이자카야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한잔씩,
그리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교자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노릇노릇 잘 튀겨진 교자를 맛보았을 때 음식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정 일본 장인의 손맛일까???!’
시부야.
시부야 역에 도착하니 지하철 밖으로 보이는 휘황찬란한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주말이었기에 인파는 엄청났고 시부야 한복판 횡단보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시부야는 볼거리도 사람도 많아서 목적 없이 구경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매우 큰 시내였다.
백화점, 식당, 술집, 카페, 게임센터, 가라오케 등 이 있었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세계화와 젊음의 혈기를 느꼈다.
꼬르륵 뱃고동 소리를 듣고 우리는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스시가게에 들어갔다.
회전률이 빨라서인지 우리는 금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앞에 놓여 져있는 컴퓨터 한 대와 눈앞의 레일위로 날아다니는 스시들.
컴퓨터로 주문을 하고, 주문한 스시가 무인으로 서빙되는 시스템이었다.
언어를 한국어로 바꿀 수 있어 주문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스시가격은 다양했는데, 이곳은 100엔 스시로 유명한 곳이었고,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초밥뷔페와 같은 ‘가성비’만 좋은 가게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식감부터 달랐다.
단 돈 100엔(부가세 포함 108엔)에 이렇게 맛있는 스시를 접할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현지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니 너무나도 맛있어서일까, 10접시나 먹고서야 배고픔이 가셨다.
도쿄타워.
도쿄타워는 한국의 남산타워만큼이나 높게 느껴졌다. 도쿄타워 밑에서 타워 끝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금이 저려왔다.
본래 방송용 수신탑이었던 도쿄타워는 이제 도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관광명소다. 입장료는 900엔과 1,600엔.
전망대에 올라가니 대부분 관광객들이었고 탁 트인 도쿄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 전경을 경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한 번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후, 유학원 도쿄센터에서 한일 교류회를 진행한다고 참석여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새로운 곳에서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유학생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참석했다.
도쿄센터는 다카다노바바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친구, 핸드폰앱 구글지도를 들고 목적지로 향했다.
일본에 와서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일본의 하늘은 항상 맑고 청량하다.
늦지 않게 도착한 우리보다도 많은 한국인들이 착석해 있었다.
차례차례 하나 둘 일본인들이 공석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룸메이트는 신이 났나보다. 평소보다도 데시벨이 높아졌고, 동공도 확장 되어있었다.
위트있게 얘기를 하니, 단연 일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나도 옆자리에서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 나란히 둘러 앉아 빙고 게임도 했다.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들과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이찌방 도쿄센터에서 현지에 있는 유학생을 케어를 해줘서 새로운 경험과
유학생활의 정보공유, 일본인들과 교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ISI랭귀지스쿨.
학교는 1월11일에 개강했다. 학교에서 레벨 테스트 및 간단한 환영회가 있어서
또 우리 모두의 친구 구글지도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외관 및 내부시설은 상당히 쾌적하고 깨끗했다.
1층에는 안내 및 접수센터가 있었고, 2층에는 매점(다른 학교에는 매점이 없다), 다른 층에는 교실 및 상담실이 있었다.
테스트는 6층에서 이루어졌는데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빨리 테스트를 끝내고 나왔다.
신입생 환영회도 끝이 나고 각자의 반은 테스트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데,
나는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성원에 힘입어 테스트에서 단 한 번에 !!!
초급에서도 제일 낮은 반으로 들어갔다...
수업 첫날,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을 보고 ‘이 선생님과 3개월을 보내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학교 시스템은 담당선생님이 있고 매일 다른 선생님이 들어와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수업은 교과서 외 1권의 부록, 1권의 한자문제집 그리고 단어를 프린트해서 나누어 준 유인물로 진행이 된다.
교과서 1과를 들어가기 전,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1과 중요 문법을 익힌 후 처음부터 차근차근 진도를 나간다.
그리고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선생님과 회화 방식으로 답변 한다.
한자는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간 후 수업 매 첫 시간, 하루에 6개씩 공부를 하고,
부록은 그 날 끝낸 해당과를 숙제로 해오면 된다.
이런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점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해주고
또 질의응답도 학생들이 아는 단어 내에서 해주려는 것 이다.
반 학생들은 유학원에서 안내받은 대로 정말 최다국적이었다.
약 20명 정도로 프랑스, 터키,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홍콩, 타이완, 중국, 콜롬비아, 한국까지
학교에서도 새삼 세계화를 느꼈다.
수업시간에 야외활동으로 담당 선생님과 반 학생 전체가 신사 탐방을 가기도 했다.
신도는 일본의 고유 민족 신앙으로,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일본인들은 신단을 참배하면서 조상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입학이나 진학, 졸업, 취직, 환갑 등의 날에는
각 가정마다 신단 앞에 가족들이 모여 감사와 축하의 기원을 한다.
나는 하지 않았지만, 같은 반 영어권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문화로 신기했는지 참배를 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전전긍긍 일본어 공부만 했다. 내가 있는 초급반은 3개월 동안 25과중에 17과까지 진도를 나간다고 했지만,
나는 더 빨리 진도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조금 생겼다. 선생님에게 다음 반이 아닌 그 다음 반으로 월반이 가능한지 질문했지만 대답은 “NO".
학교시스템에 의해서 진도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월반에는 어려운 부분이 따른다고 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다른 학교보다 진도가 느리게 나가는 점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진도가 느린 이유는 영어권 학생들에게 일본어가 더 생소하고,
그 인원수도 더 많기 때문에 비중이 영어권 학생들에게 더 치우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봄 방학을 앞둔 지금, 일본에 온지 3개월 정도가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일을 시작하려 결심했는데 어떤 새로운 일이 펼쳐질지 생각해본다.
더 많은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더 많은 일본어를 터득해서 생활에 불편함이 덜어질 것이고,
혹 한국 친구들이라도 오게 된다면 여행가이드까지 자처할 수 있는 앞날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하다 중단하는 것을 두려워하라.”
세상이 요구하는 안정적인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낯선 땅에서의 삶을 시작한 지금이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고의 세월을 지내고 나면 그 끝에는 내가 꿈꾸고 내가 기대했던 나의 모습에 닮아있으리라 믿는다.
더 멀리 뛰기 위해선 더 많이 움츠려야 하듯 더 나은 내 모습을 위한 지금 나의 움츠림이
더 멀리 나아가는 내 미래를 만들어 내리라 확신한다.
나의 인생의 전환점,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주고 함께 걸어준 이찌방 유학원에 감사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